나는 점집이 맞을까? 명리가 맞을까?
문득 저도 공부하면서
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.
어쩌면 조금은 심각하게 했던 적이 있었답니다.
왜?
공부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랄까요^^~
하지만,
이 두가지를 놓고 가만히 비교해본다면
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더라구요^^
<점집-단답식 vs 명리-주관식>
점집은 그냥 yes 또는 no 인 단답식이라면,
명리는 주관식이라고 볼 수 있더라구요.
명리는 하나의 상황을 언급할 때마다 거기에 대한 근거를 들어서
설명함으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이라면
점집은 그런 근거 보다는 그냥 Feel(촉감)으로(그분들 말씀으론 신령님이 말씀)
단답식 언급만 할 뿐입니다. 물론 나름의 근거를 말한다고 하지만,
신령님들이 그런 근거까지 말한다는 경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.
마치, 조폭들의 명대사로 "알면 다친다~~"처럼 말입니다.
<점집-과거를 보는자 vs 명리-미래를 보는자>
점집은 보통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신이 주체라고 하는 활인업입니다.
그런데, 하나같이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, 귀신같이 과거는 맞추는데,
미래는 신통치 않다는 말씀들을 합니다.
즉, 귀신은 사람의 흔적을 보고 이야기 할 뿐입니다.
사람이 생각하는 거룩한 계획을 우짜다가 맞출 수는 있겠지만,
알아차리기 쉽지 않습니다.
즉, 과거를 기준으로 앞을 맞추는 정도는 할 지 몰라도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
음의 영역이 아니라 양의 영역이라 그럴 수 있습니다.
지금도 우리의 과거는 이미 지난 것이고,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이기에
음의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.
명리는 음의 세계를 양의 세계로 사람을 세우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활인업입니다.
그러한 근거는 인간들의 삶의 법칙과 각자 나타나는 남들보다 조금 다른 신끼까지 동원하여
과거보다는 미래의 일을 더 집중하여 미리 어떤 상황과 일에 있어서 대비하여
좀 더 나은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.
과거의 좋지 못한 것도 앞으로 잘하도록 준비하여 조금 덜 피해입도록,
조금은 덜 어렵도록 대비시키며, 같이 공감하여 설계하며, 준비하도록 시키는
미래의 파수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.
그래서, 과거의 집착인 음의 영역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협력할 수 있는 양의 영역으로
사람을 세우는 일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.
<결론>
그러니,
앞으로의 소통과 공감을 모티브로 하여 사람들을 세우는 일이
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,
그 일이 나의 적성과 맞다라면 명리가 적성인 듯합니다.
그러기에는 공감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로
상대의 마음과 운명을 이해하고, 또 앞을 계획하고 설계해야하고,
상대방을 세우며, 그 상대방과 공감할 친구이자 조언자이자
미래설계자의 꿈이 더 크다면
보이는 돈보다도 보이지 않는 가치와 함께할 참다운 신의 도움으로
일어설 것입니다.
물론 쉬운공부가 아니며, 어렵다고해서 못하는 공부도 아니기에
신과 함께 다져나갈 마음의 부자로 일어난다면
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얻을 것입니다.
"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내마음을 지키라.
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"
※사진: Unsplash의 Natalie Kinnear